슈퍼리치가 하나 이상의 여권을 보유한 이유
슈퍼리치가 하나 이상의 여권을 보유한 이유
- Victor Habbick/Visuals Unlimited, Inc.
- “세계 어디에나 내 집이 있다. ” 이중국적을 취득해 위험을 분산하는 부자들이 증가하고 있다.
해당 기사는 월스트리트저널 자매지인 금융주간지 배런스에 게재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슈퍼리치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날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다. 고국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경우를 대비해 제 2의 여권을 마련하고, 해외에 부동산을 사두며, 국외로 자산을 빼돌리는 갑부들이 늘어나고 있다. 부지불식간에 코스모폴리탄 엘리트 계층이 생겨난 셈이다. 이들은 이 도시의 시민이기도 하면서 저 도시의 시민이지만, 엄밀한 의미로 따지면 특정 국가의 국민은 아닐 수도 있다.
이것이 최근에 발표된 한 보고서의 결론이다. 미국 보험사 ‘내셔널 파이낸셜 파트너스(NFP)’와 국제 자산정보업체 ‘웰스엑스(Wealth-X)’에 따르면, 순자산 규모가 3,000만 달러(약 335억 원) 이상인 초고액 순자산 보유자(UHNWI)는 전 세계에 21만1,275명 있다고 한다. 이들의 자산을 합하면 29조7,000억 달러(약3경 원)에 달한다. 그러나 이들이 나이가 듦에 따라, 향후 30년 동안 이 자산 가운데 16조 달러(약1경7000조 원)가 상속될 전망이다.
현재 미국 경제 규모와 맞먹는 수준의 부(富)가 대물림된다는 얘기다. 이 과정에서 전 세계 프라이빗뱅크 업계에는 승자와 패자가 갈릴 것으로 예상된다. 웰스엑스는 16조 달러에 달하는 부가 이전되면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또 다른 부가 형성될 것으로 추정했다. 웰스엑스는 UHNWI는 연간 4.6% 증가하고, 이들이 보유한 자산은 연간 6.7%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 추정이 현실이 된다면 세계 억만장자 인구는 2020년까지 1,700명(80%)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충격적인 사실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자산은 결국 어디로 향하게 될까? 어디로든 향할 수 있을 것 같다. 슈퍼리치 가운데 약 64%는 자수성가한 1세대 자산가로, 평균 연령은 59세다. 이들이 보유한 순자산은 평균 1억4,100만 달러(약 1,500억 원)다. 이 순자산의 38%는 비상장사에 묶여있다.
이들은 또한 전 세계를 제 집처럼 드나든다. 억만장자들은 7,800만 달러(약 800억 원)를 호가하는 부동산 네 채를 평균적으로 보유하고 있다. 이 부동산 대부분은 해외에 있다. 데이비드 프리드먼 웰스엑스 회장은 “요즘은 럭셔리 부동산이 예전에 스위스 은행 계좌가 하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프리드먼 회장이 핵심을 잘 짚었다. 슈퍼리치는 포트폴리오 다양화라는 단순한 전략을 넘어선 방식으로 위험을 분산하고 있다. 전 세계에 자산을 골고루 퍼뜨리면서 여권도 챙기고 있는 것이다. 억만장자들은 초고액 순자산 보유자(UHNWI)들에 비해 투자이민을 신청해 영주권 또는 이중국적을 취득할 가능성이 5배 높다.
해외에 고가의 부동산을 구입하면 시민권을 내주는 나라들이 있다. 지난해 몰타에 접수된 귀화 신청 건수는 400건이 넘는다. 투자 규모로 따지면 4억5,000만 유로(약 5,600억 원)에 육박한다. 몰타 총리는 “시민권의 개념이 빠르게 진화하고 있으며 우리는 이 혁신의 선두에 서고 싶다”고 밝혔다.
프리드먼 회장에 따르면, 러시아인들은 안전상의 이유로, 중국인들은 높은 사회적 신분의 상징으로 외국 국적을 취득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당국과 마찰을 빚을 경우 해외로 조용히 도피해야겠다는 생각도 중국인들이 외국 국적을 취득하는 또 하나의 동기가 아닐까 짐작된다.)
반면 중동의 부호들은 국내의 불안정한 상황을 탈출하기 위해서 외국 국적 취득에 열을 올린다. 좋은 교육 환경과 여행의 편리함도 결정적인 요인이다.
미국인들이 시민권을 포기하는 이유는 대체로 조세 회피에 초점이 맞춰진다. 이 사실은 좀 더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미국과 에리트레아(아프리카 북동부에 있는 공화국)는 납세자의 거주지에 상관없이 해당 납세자가 전 세계에서 올린 소득에 대해 과세하는 나라다.
가령 부유한 미국인이 수십 년 동안 해외에 체류했다고 가정해보자. 이 사람이 현재 거주하는 국가와 미국 양쪽에 세금을 내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미국 시민권을 공식적으로 반납하는 것이다.
2013년 미국 시민권을 포기한 국외 거주자 숫자는 221% 증가하면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그래봤자 겨우 2,999명에 불과하다.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는 절차가 까다로운 데다가 비용도 많이 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 시민권을 반납한 후에도 자산이 200만 달러(약 20억 원)가 넘거나 연간 순소득이 16만 달러(약 1억7,000만 원)인 사람은 자산 전체를 공시해야 하고 69만 달러(약 7억 원) 이상의 미실현이익에 대해서는 고액의 ‘출국세’를 내야 한다.
두 줄 정리: 전 세계 초고액 순자산 보유자(UHNWI) 21만1,275명이 보유한 자산 29조7,000억 달러(약3경 원) 가운데 3분의 1가량은 현재 미국에 있다. 자신감이 예전만큼은 못할지 몰라도, 미국 정부는 자산의 해외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http://kr.wsj.com/posts/2015/01/22/%EC%84%B8%EA%B3%84-%EB%B6%80%EC%9E%90%EB%93%A4-%EC%8A%A4%EC%9C%84%EC%8A%A4%EC%9D%80%ED%96%89-%EB%8C%80%EC%8B%A0-%ED%95%B4%EC%99%B8-%EB%B6%80%EB%8F%99%EC%82%B0%EC%97%90-%ED%88%AC%EC%9E%90%ED%95%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