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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일반

모바일 신언서판

모바일 신언서판 스마트폰 시대에 사람을 판단하는 새로운 기준

에티켓은 패션처럼 시대와 상황에 따라서 달라진다. 사회적 필요에 따라 동시대인들의 공감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약속이다.

휴대전화가 널리 보급되기 이전 여러 사람이 공중전화를 공유하던 시기의 전화 예절은 ‘용건만 간단히’였다. 공중전화마다 늘어선 긴 줄은 언제나 만날 수 있는 장면이었다. 공중전화 부스 주변에서 통화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이 전화기를 붙들고 끝없이 수다를 떠는 사람을 째려보거나 대놓고 핀잔을 주다가 시비로 이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공중전화를 쓰려고 줄을 선 사람들. ‘용건만 간단히’가 필요한 상황이다. 휴대전화가 보급되기 전인 1991년의 사진.

과거 시외전화는 거리가 멀수록 요금이 올라가는 방식이었다. 시골에 계신 부모님께 안부 전화를 걸면 몇 마디 인사 뒤에 곧바로 “전화 요금 많이 나온다. 이제 끊자”라는 목소리가 흘러나오던 시절도 있었다. 이동통신업체들의 경쟁이 치열하고 무료 음성 통화 앱까지 등장한 스마트폰 환경과 비교하면 까마득한 옛날 얘기처럼 들린다. 무제한 음성 통화까지 가능해진 세상에 젊은 세대에게 ‘용건만 간단히’라고 전화 예절을 강조할 필요는 없다. 요즘 젊은이들은 웬만해서는 음성 통화를 하지 않는다. 조용하게 문자로 대화하지, 음성 통화로 주변을 소란스럽게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과거의 전화 예절을 그대로 쓰고 있다면?

달라진 소통 방법과 기술 환경에 따른 새로운 통신 에티켓이 필요하지만 그 필요성을 제대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자녀나 학생들에게 새로운 통신 예절을 가르쳐야 할 부모나 기성세대가 오히려 교육받을 대상보다 해당 기술에 대해 문외한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오히려 부모가 스마트폰을 이용한 문자 기능과 SNS 사용법을 자녀로부터 배워야 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렇다고 자녀들이 또래들로부터 익혀서 사용하는 문자 대화나 전화 사용 습관을 부모가 내버려두고 모른 체할 일은 아니다. 사실은 휴대전화와 스마트폰을 사용하게 된 우리 자신도 새로운 에티켓이 무엇인지 스스로 모색해야 한다. 과거 유선전화와 공중전화 시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스마트폰이 우리 생활과 대인 관계의 많은 부분에 깊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새로운 통신 예절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다양한 실험과 심리학적 개념을 통해 ‘첫인상’이 사람에 대한 인식을 상당 부분 결정짓는다는 사실이 드러났지만 전통 사회에서는 ‘신언서판(身言書判)’이 상식으로 통용돼왔다. 과거에 사람의 됨됨이를 평가할 때 우선 몸가짐을 보고 이어서 말하는 태도와 글 맵시를 차례로 살폈다면 지금은 전화기를 통해 말과 글을 살피는 세상이 됐다. 상대가 공공장소나 업무 중에 전화기로 통화하는 태도, 문자메시지나 소셜네트워크에 남기는 글을 통해서 그 사람을 판단할 수 있다.

신언서판(身言書判)은 전통사회에서 한 인물을 평가하는 네 가지 조건인 '몸가짐, 말씨, 글, 판단력'을 말한다.

'여보세요'가 사라진 통신 프로토콜

외교에서는 프로토콜이 매우 중요하다. 국가 정상의 방문만 해도 국빈 방문, 공식 방문, 실무 방문, 개인적 방문 등 종류에 따라 상대국의 프로토콜이 달라진다. 각각의 행동에 대해 상호 간에 약속을 정해놓지 않으면 소통이 되지 않고 불필요한 마찰과 긴장이 생기기 때문에 외교에서는 회담의 내용 못지않게 프로토콜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통신도 마찬가지다. 오랜 옛날 불과 연기로 신호하던 봉화부터 짧은 전류와 긴 전류를 이용해 알파벳과 숫자를 표현하던 전신에 이르기까지 보내는 쪽과 받는 쪽이 특정 신호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약속을 한 뒤에 비로소 통신이 가능했다. 무전기를 이용한 대화에서는 말 한마디를 마칠 때마다 ‘로저(roger:알았다’)’나 ‘오버(over:이만 끝)’ 같은 고유한 규약을 사용해 혼선과 오해를 줄였다.

인터넷이라고 하는 일찍이 상상하기 어려웠던 소통 수단도 그 핵심적 기술은 파일 전송 규약(TCP/IP)이 발명되면서 가능해졌다. 이 프로토콜은 송신자가 파일을 여러 부분으로 쪼개서 다양한 경로로 보내면 받는 쪽에서 이를 조합해 파일을 재구성할 수 있게 한다.

통신에서는 발신 장치와 수신 장치가 연결되는 기계끼리 공통의 규약이 필요한 것처럼 그 기기를 이용하는 사람들 간에도 일종의 프로토콜이 필요하다. ‘헬로’, ‘모시모시’, ‘여보세요’처럼 어느 문화권이나 공통의 전화 예절이 있는 이유다. 하지만 스마트폰 이후 오랜 전화 예절도 달라지고 있다.

스마트폰 시대의 전화 예절은 달라지고 있다.

누가 나서서 가르치지 않았지만 휴대전화 통화에서 수신자의 “여보세요”라는 인사말이 사라지고 대신 발신 상대에 따라 서로 다른 응대법이 자리 잡은 것이 대표적인 예다. 사실 서로 알 만한 상대의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어 “여보세요”라는 첫 응대를 받으면 ‘아니, 내 전화번호도 등록해놓지 않았다는 말이야’라는 생각이 꿈틀거리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여보세요” 대신 “오랜만이야”, “무슨 일이야”, “점심 먹었니?”라는 발신자별 맞춤형 응대어가 정착하고 있다.

누구나 휴대전화를 지니고 다니는 세상에서 새로운 프로토콜의 필요성은 비단 수신자의 발신자별 맞춤형 인사말에 머무르지 않는다. 휴대전화는 수신자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발신자 위주의 통신 수단이다. 사무실이나 가정의 유선전화는 회의 중일 때나 화장실에 있을 때 받는 것이 기본적으로 불가능했다. 휴대전화는 다르다. 수신자가 어디에 있건 24시간 응대가 가능한 통신 수단이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전화 에티켓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발신자가 수신자에게 “지금 전화 받기 괜찮으세요?”라고 묻는 것이 예의가 된 것이다. 좀더 센스 있는 사람들은 통화에 앞서 미리 문자를 보내 언제 통화하기 좋은지를 물어보기도 한다. “엄마다”라며 무시로 전화를 걸던 노모께서도 최근에는 “엄만데, 지금 통화할 수 있니?”라고 묻는다. 최신 스마트폰 사용법에 익숙한 상당수 젊은이들도 무심한 최신 휴대전화 프로토콜을 노모께서 터득하신 것이다.

스마트폰 꺼내놓기만 해도 상대가 멀어진다?

수신자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불쑥 전화를 걸어 용건부터 쏟아내는 무신경한 발신자들에게만 새로운 통화 예절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함께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들을 어이없고 무안하게 만드는 수신인들도 상대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무신경한 사람이다. 나와 대화하고 있는 상대가 어디서 걸려왔는지도 모를 전화를 받느라 잠시 동안 꿔다놓은 보릿자루 신세가 되는 것은 이제 드문 일이 아니다. 회의나 대화 도중에 걸려오는 전화에 수시로 응답하느라 논의가 갑자기 중단되고 요란한 벨소리에 분위기가 깨지며 참석자들을 불쾌하게 하는 일도 다반사다. 사실 스마트폰 시대에 ‘무례한’ 통화 태도가 워낙 일반화한 탓에 미팅 장소에 함께 있는 사람들도 으레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미팅이나 중요한 만남을 앞두고는 휴대전화를 ‘방해금지(차단) 모드’나 ‘진동’으로 설정하는 것이 좋다. 휴대전화를 직접 받지는 않더라도 대화 상대 앞에 꺼내놓는 것만으로도 관계 형성에 영향을 끼친다는 연구도 있다. 영국 에식스대학의 앤드루 프르지빌스키(Andrew Przybylski) 교수팀은 처음 만나는 두 사람에게 10분 동안 최근 있었던 흥미로운 일을 주제로 대화하게 했다. 한 집단은 탁자에 수첩을 놓고, 다른 집단은 휴대전화기를 올려놓은 채 대화하게 한 뒤 상대가 느낀 관계와 친밀함의 정도를 평가하게 했던 것이다. 그 결과 휴대전화기를 노출하고 대화한 집단은 비교 집단에 비해 관계와 친밀함의 정도를 낮게 보고했다. 누군가의 휴대전화가 눈에 띄는 것만으로도 관계의 친밀도가 떨어진다는 것을 보여준 연구다.

앞에 꺼내놓은 스마트폰 하나가 당신을 부정적으로 평가할 요인이 될 수 있다.

물론 전화는 걸고 받는 사람과 그 내용에 따라 긴급도와 중요도가 제각각이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는 무조건 전화를 안 받을 수가 없다. 또한 우리나라처럼 위계질서가 뚜렷한 사회에서는 윗사람이나 상사로부터 걸려온 전화에 대고 “지금은 통화가 어려우니, 나중에 다시 전화해주십시오”라고 말하는 것이 쉬운 일도 아니다. 요긴한 전화라서 미팅 중에라도 즉시 전화에 응대해야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럴 때는 미팅 전에 어디에서 전화가 걸려올지 모르는데 중요한 일이라서 꼭 받아야 되니, 잠시 통화를 하게 되더라도 양해해달라고 말하는 것도 새로운 에티켓이다. 또 전화가 왔을 때는 “우리 팀장님이라서 꼭 받아야 합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양해를 구하는 매너도 있다. 혹은 통화를 마친 뒤에 “아이가 갑자기 전화를 거는 바람에 미안했다”고 나름대로 피하기 어려웠던 사정을 설명할 수도 있다.

직장이나 모임에서 위계가 높거나 나이가 많을수록 이런 에티켓에 무심해지는 경우가 많다. 회의를 주재하는 사람이나 발언을 하던 사람이 스스로 말하는 도중에 걸려온 전화를 받는 경우다. 그런 경우 나이가 많거나 지위가 높다는 이유로, 동석자들에게 자신의 휴대전화 수신에 대해 아무런 양해나 설명 없이 넘어가는 경우도 흔하다. 상당한 무례가 아닐 수 없다. 사실 모임에서 지위가 높을수록 기준을 제시하고 규칙을 형성하는 힘이 있기 때문에 좀더 올바른 통화 예절의 본보기를 보일 필요가 있다. 문자메시지에 있어서도 적절한 단어를 선택하고 조직의 위계질서가 반영된 방식으로 소통하지 않는 것이 좋다.

에티켓은 사회 구성원들끼리 공감하는 약속이다. 일본 대도시에서 지하철을 타보면 승객 대다수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긴 하지만 음성 통화를 하는 경우는 드물다. 지하철 같은 공공시설에서 소리 내 통화하는 것을 교양 없는 행동으로 여기는 사회 분위기 때문이다. 미국도 비슷하다. 글로벌 도시 뉴욕은 지하철 망이 복잡하게 발달하고 도시 기능의 중추를 담당하고 있지만, 근래까지도 지하철에서 휴대전화로 통화를 하기는 힘들었다. 2010년 이후 비로소 지하철 내 중계기가 설치되면서 통화 가능 구역이 확장되고 있는 상황이다. 기술적 문제보다도, 지하철 구간에 통신 중계기를 설치하게 되면 지하철이 통화 소리로 시끄러워질 수 있다는 반대 여론이 강했던 탓이다. 하지만 스마트폰 이후 음성통화가 아닌 데이터 통신 위주의 휴대전화 사용 문화와 911 등 긴급통화 필요성이 높아지면서 반대 여론이 밀려나게 됐다.

우리 지하철에서도 이어폰 없이 스포츠 중계를 보거나 드라마를 보는 장ㆍ노년층들이 있었지만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추세이고, 공공시설 내 스마트폰 사용 에티켓 홍보 캠페인도 진행되고 있다.

‘신언서판’은 스마트폰 시대가 되면서 새로운 의미에서 더욱 중요해졌다.

전통 사회에서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었던 ‘신언서판’은 스마트폰 시대가 되면서 새로운 의미에서 더욱 중요해졌다. 전화가 걸려오면 자연스럽게 나타나기 마련인 그 사람의 말하는 태도와 주변 사람에 대한 배려, 문자 대화와 SNS에서의 표현 방법 등은 모바일 환경에서 누군가의 인상과 됨됨이를 판단하게 하는 주요한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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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권 | 한겨레신문 부설 사람과디지털연구소 소장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한양대 언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한양대 신방과 겸임교수를 지냈다. 1990년부터 한겨레신문 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2014년 설립된 사람과디지털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당신을 공유하시겠습니까?](2014), [인터넷에서는 무엇이 뉴스가 되나](2005), [별별차별](2012, 공저)을 저술했으며, [잊혀질 권리](2011)를 번역했다. 사람과디지털연구소를 통해 디지털 시대, 기술의 새로움과 편리함 너머 더 행복하고 지혜로운 사용법을 성찰하고 널리 알리면서 ‘디지털 리터러시’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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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철학과 구체적인 지침을 ‘디지털 리터러시’ 개념으로 제안한다. 디지털의 속성과 구조를 파악하고 디지털 문법을 제대로 이해하고 사용하는 능력이 우리의 삶을 좌우하는 필수 교양이 된 것이다. SNS가 주는 박탈감이나 행복감 모두를 성찰하면서 도구로서 현명하게 사용할 방법을 권한다. 사람과 디지털의 건강한 관계 맺기를 위한 지침서!
발행20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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